사무실 근처 콩나물 국밥을 잘하는 식당에 지인과 우연히 들렸다가 좋은 글 하나 건졌다.
살다 보면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있다마는, 잠시 대역 연기를 하는 것일 뿐
슬픈 표정 짓는다 하여 뭐 달라지는 게 있겠소 또한 기쁜 표정 짓는다 하여 모든 게
기쁜 것만은 아니라오.
참으로 세상을 달관한 듯한 재미 있는 글이었다. 오쇼의 “이해의 서”란 책의 일부를 인용하
면서 이야기 해 보자.
어떤 사람이 모욕을 했다고 하자. 그가 스위치를 누르면 그대는 반응을 한다. 그대는 화를
내면 상대방에게 덤벼든다. 이것은 진정한 행동이라 할 수 있는가? 그것은 반응이지 행동이 아니다. 이는 곧 상대방이 그대를 조정하고, 그대는 그가 조정하는 대로 움직인다는 의미다. 상대방이 위치치를 누르면 그대는 기계처럼 작동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등 수위치를 켜면 불이 들어오고 스위치를 끄면 불이 나가는 것처럼 사람들이 그대에게
하고 있는 일이다. 그들이 불을 켜고 끄듯이 그대를 마음으로 조종한다.
누군가 그대를 치켜 세우면 그대는 자만심이 한껏 부풀어 올라 날아가듯이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이 와서 당신의 마음을 건드리면 한 순간에 바닥까지 추락한다. 만약에 이렇게 감정 컨트롤이 안 된다면 그대는 그대 자신의 주인이 아니다. 누군가 그대를 모욕할 수도 있고 슬프게 만들 수도 있다.
이처럼 누구나 그대를 화나게 하고, 폭력적으로 만들고, 미치광이 상태로 몰아갈수도 있다. 누구든지 그대를 치켜 세워서 으쓱하게 만들 수 있다. 그 때 마다 당신의 마음이 상대의 조정에 따라 로봇처럼 왔다 갔다 해도 되겠는가?
어느 날 붓다가 어떤 마을을 지나가고 있을 때의 일이다. 사람들이 몰려와 그를 모욕하면서 온갖 상스러운 욕을 퍼부었다. 붓다가 그 자리에 서서 조용하게 그 욕을 듣더니 말했다. “이렇게 저를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제가 다른 마을로 가는 중이니 여기서 지체할 시간이 없군요. 그 마을에서 많은 분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일은 꼭 여기로 돌아와서 여러분과 더 많은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미처 못다한 말씀은 내일 하도록 하시고, 오늘은 이만 양해해 주십시오. “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어이가 없었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기에 그렇게 시한 욕을 듣고도 조금도 흔들림이 없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가? 마을 사람들 중에 한 명이 소리쳤다.
“당신은 우리가 외치는 소리를 듣지 못했는가? 우리가 욕을 퍼부었는데 왜 대꾸조차 하지 않는가?” 붓다가 말했다.
“내가 대꾸하기를 원하셨다면 너무 늦게 오셨군요. 아마 십 년 전에 저를 만났다면 어던 응답을 들을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십 년 전부터 나는 다른 사람에게 조종당하는 것을 그만 두었습니다. 나는 더 이상 다른 사람의 노예(요즘은 로봇)가 아닙니다. 나는 나 자신의 주인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동합니다. 나는 내면의 욕구에 따라 행동을 하고 주도적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내게 모욕을 주고 싶었고, 그대로 실행했습니다. 좋습니다. 이젠 만족 하시겠지요? 여러분은 하고 싶었던 일을 잘 해낸 것입니다. 하지만 내 처지에서 보면, 나는 여러분의 욕을 그대로 받아 드리지 않습니다. 내가 받아 드리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모든 것은 내 마음 먹기에 달렸다라는 뜻도 된다. 이왕이면 내 몸의 주인인 내가 내 마음대로 내 생각을 지배할 수 있다… 누가 뭐라 하던간에 해석은 받아 들이는 내자신의 의지대로 해야 한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