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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젼리더십

영원히 사는 법

최근 신문에 실린 사진 두 장이 나의 눈길을 멈추게 한다. 첫번째의 사진은 행복전도사로 국민들에게 알려진 최윤희씨의 자살 보도와 함게 실린 사진이다. 그의 나의 63세다. '700가지 통증에 시달려본 분이라면 마음을 이해할 것. 저는 통증이 너무 심해서 견딜 수 없고 남편은 그런 저를 혼자 보낼 수는 없고…그래서 동반떠남을 하게 됐다’는 내용의 유서와 함께 자연스럽게 끝까지 다하지 못하고 미완성의 삶을 마감한 사례이다. 두번째의 사진은 최근 자신의 출간기념 사인회에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탔다가 갑작스레 복통을 일으켜 병원신세를 져야 했던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퇴원 나흘 만에 다시 망치를 들고 ‘사랑의 집 짓기 운동’을 하러 나선 모습이었다. 그의 나이 86세다. 정말이지 ‘끝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두가지 사진속에서 나는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하는 느낌을 받았다...전자에게는 인간적 연민의 정과 육체적 고통속에서 오는 인간적 갈등을 이해 할 만하다...하지만 아쉬운 마음은 숨길 수가 없다..후자의 사례는 우리들에게 잔잔한 아름다움을 전해 주는 것 같다.  

1967년 10월 9일. 남미 볼리비아의 산중에서 총성이 울렸다. 그리고 서른아홉 살의 한 사내가 눈을 뜬 채로 죽었다. 죽어서도 결코 꿈은 포기할 수 없다는 듯이. 그의 이름은 체 게바라! 체는 아르헨티나의 명문가 출신이었다. 의대를 다녔고 남들처럼 출세할 꿈도 있었다. 하지만 젊은 시절 여행을 통해 굶주리고 억압받는 남미의 민초들을 접한 후 새로운 세계에 대한 열망과 변혁에의 불꽃을 죽는 그 순간까지 지폈다. 그는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 혁명을 결행했다. 하지만 혁명이 승리한 후 장관·국립은행 총재·사령관 직 등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다시 새로운 혁명의 전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타국 볼리비아의 산중에서 죽었다.

체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사는 동안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진실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죽음을 실패라 여기지 않을 거다. 터키의 혁명시인 힉멧이 노래한 것처럼 ‘난, 단지 하나, 미완성 서사시의 슬픔을 무덤으로 가져갈 뿐’….” 그렇게 그는 끝까지 갔다. 끝까지 간다는 것은 비록 미완성일지라도 슬프도록 아름다운 것이다. 그래서 그가 죽은 지 40년도 훨씬 더 됐지만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그를 기억하고 흠모한다. 단지 파이브를 물고 베레모를 쓴 걸개그림의 이미지로서만이 아니라 진정한 인간의 풍모로서 말이다. 그는 여전히 살아 있다..죽어도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이다...

 2010년 10월 가을의 서늘함이 가득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제임스 드프리스트의 지휘로 서울시향이 말러 교향곡 10번을 연주했다. 누군가 “교향곡에 10번도 있나?”하고 물었다. 그렇다. 완성된 교향곡에 10번은 없다. 베토벤도 9번이 끝이다. 말러도 예외가 아니다. 말러 교향곡 10번은 1악장까지만 관현악 총보가 남아 있고 나머지 악장은 스케치만 전하는 미완성이다. 이것을 데릴 쿠크가 보필해 마무리 지은 것을 이번에 연주했다. 비록 말러가 직접 쓴 것은 1악장뿐이지만 그는 끝까지 완성을 향해 몸부림친 거다. 그래서일까. 말러 교향곡 10번을 듣는 감흥은 남달랐다. 뭐든 끝까지 몸부림친 것에는 묘한 기운이 있기 마련이니깐 드프리스트는 이번에도 휠체어를 탄 채 지휘했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 스쿨을 다닐 때까지 그는 멀쩡했다. 하지만 졸업 후 진로를 바꿔 음악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26세 무렵 그는 소아마비를 앓는다. 그 후 그는 평생을 휠체어에 몸을 싣고 지휘했다. 그는 이미 70대 중반의 나이지만 진짜 끝날 때까지는 아직 끝난 게 아님을 온 몸으로 웅변하는 지휘를 청중에게 보여주고 들려주며 절절히 느끼게 했다. 끝까지 하는 것엔 늘 감동이 있다.

10월 4일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독주회를 가진 우리나라 바이올린계의 대모 김남윤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는 세계적인 콩쿠르를 휩쓴 젊은 바이올리니스트를 대거 키워낸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녀는 말한다. “재능 있는 아이들은 많지만 끈기가 없으면 반짝하다 말죠.” 그녀의 말마따나 10대에 최고 기량을 발휘하고 주춤거리는 연주자야말로 그 앞에 기다리는 것은 슬럼프밖에 없어 가장 불행한지 모른다. 그렇다. 끈기다. 근성이다. 끝까지 하겠다는! 그것이 지금 잘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어차피 삶은 미완성이다. 하지만 끝까지 함으로써 미완성은 완성을 품어낸다. 그리고 언젠가 그 미완성의 씨앗은 완성의 열매를 맺는다. 그러니 여기서 멈추지 말자. 여기서 그치지 말자. 미완성을 두려워 말고 끝까지 함으로써 그 안에 완성의 씨앗을 배태시키자. 비록 그 길이 아무리 험한 길이라  할지라도 이미 그 길을 간 사람이 있음을 명심하자 ...설사 가고자 하는 그 길이 비록 처음이라 할지라도 그길을 가고자 하는 수 많은 사람들에게는 희망이 되기 때문이다...이것이 삶을 사는 오늘 우리의 자세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