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월 21일 한평생을 인권운동가로 살다가 비명에 간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데이입니다 .
킹 목사를 생각하면 그 유명한 연설문이 떠오릅니다
' I Have a Dream ' “나에게 꿈이 있습니다 .
언젠가는 조지아의 붉은 언덕에서 이전 노예의 자녀들과 노예 주인의 자녀들이 형제애로 한 식탁에 앉을 것입니다
언젠가는 앨라배마의 인종주의자들이 물러가고
거기서 나의 어린 아들과 딸이 백인의 아들 딸들과 형제와 자매로
손에 손을 잡고 살아갈 것이라는 꿈입니다 ”
킹목사는 1929 년 1월 15일 애틀란타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27세에 인권운동 지도자가 되었고 , 35세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역대 최연소 수상자이며 그의 고결한 삶은 ‘사랑과 정의를 향한 지칠 줄 모르는 열망 ’ ‘폭력과 위선으로 가득찬 세계에 맨손으로 맞선 용기’로 추앙되다.
1968년 멤피스의 한 모텔에서 총성에 의해 마틴 루터 킹 목사는
그의 나이 채 40년도 안된 짧은 생애를 마치게 됩니다.
킹 목사가 암살되자 미국전역의 63개 도시에서 폭동이 일어나며 애틀란타에서 거행된 장례식에는 15만명이 참석했습니다 .
장례식에서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수많은 일화 중 하나인
‘버스 안 타기 ’ 거부운동의 발단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1955년 12월 1일 앨라배마주 몽고메리 페어의 창고에서 근무하는 재봉사 로자 파크스 부인은 하루종일 일하고 피곤한 몸으로
집으로 가는 버스에 탔습니다.파크스 부인은 빈자리가 없어 앞쪽
백인 좌석에 앉았습니다.그녀가 앉자마자 버스기사는
“ 그곳은 백인좌석이니 흑인들이 앉는 뒤쪽으로 옮겨 앉으라 ”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뒤쪽 흑인석에는 빈자리가 없었습니다 .
그녀는 그냥 조용히 백인 좌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버스기사는 경찰을 불렀고 그녀는 체포됐습니다.흑인과 여성운동가들은 ‘버스 안 타기 운동’을 전개하기로 하고 침례교회를 빌려 집회를 열었습니다 .그 교회의 담임목사인 마틴 루터 킹은 보스턴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고 몽고메리로 부임한지 1년밖에 되지 않은
26세의 젊은이였습니다 .1956년 12월 20일 연방법원은 버스 안에서의 인종차별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몽고메리의 흑인들이 버스를 타지 않은지 382일 만의 일입니다
킹목사를 비롯한 흑인목사들은 그날 아침 일찍부터 하루종일
버스에 올라타고 인사를 다녔습니다 운전기사에게 “ 당신의 버스를 타게 돼 기쁨니다 ”라고 악수하고 승객들에게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백인에게나 ..흑인에게나... 몽고메리 흑인들의 비폭력 운동이 성공을 거두자 남부 도시 곳곳에서 비슷한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노스캐롤라이나주 그린즈버러에서는 흑인 학생들이 백인들만 들어가는 식당에 들어가 연좌농성을 벌였습니다.
흑인과 백인이 함께 버스를 타고 남부지방을 순회하는 ‘자유의 여행’도 시작되었습니다.애틀랜타에 가면 마틴 루터 킹 주니어
국립 역사지구가 있습니다 (Martin Luther King, Jr . National Historic Site) 킹목사의 생가와 묘지 , 기념센터 등이 모여 있습니다 . 그는 그리 크지 않은 아담한 2층집에서 태어났습니다 .
킹목사의 묘는 물이 가득찬 풀안에 세워져 있고, 묘비명은 그의 연설에서 따온 ‘마침내 자유( Free at last )'입니다 ... 그의 연설이 확성기를 통하여 쩌렁 쩌렁 한 사대를 사라갔던 사람들 아니 지금의 우리들에게도 가슴속 깊이 저미는 이야기다.
I have a dream... 나에게도 꿈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