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24일 50대 후반의 여성중 또 한사람이 박사학위를 받는다.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 때 시민군으로 참여했던 이윤정(56세)씨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100세 시대에 인생 3모작에 도전하는 자세는 현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귀감이 되고 있는 것이다.
5·18’ 직후 지명수배됐던 여성 2명 가운데 한 명이었던 이씨는 오는 24일 조선대 졸업식에서 ‘오월 광주항쟁의 송백회 운동에 관한 연구-참여와 연대의 동학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는다. 5·18 피해자가 5·18을 연구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는 것은 그가 처음이다.
국내 일간지인 한계례 신문과 2012년 2월2일자 인터뷰에서 이씨는 70~80년대 홍희윤·임영희·정현애씨 등 여성 지식인·운동가와 구속자 부인들 중심으로 활동했던 여성조직인 송백회가 5·18의 발발과 확산에 어떤 구실을 했는지를 회원들의 구술로 재조명했다. 그는 “여태까지 5·18 연구는 낙후·핍박·차별 등 사실과 조건을 중시하는 구조주의적 접근으로 이뤄졌다”며 “이번에는 주도적 참여자의 관점에서 사람과 사람, 조직과 조직이 어떻게 관계를 맺고, 어떤 공유된 신념으로 사회운동을 촉발시켰는지 구성주의적으로 접근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25살이던 80년 광주기독교청년회(YMCA) 간사로 일하다 5·18 항쟁에 참여했다. 신군부가 계엄을 선포한 뒤 광주에서 시민궐기대회를 주도했고, 계엄군의 진압작전 땐 시민군의 후비대였던 광주여자기독교청년회(YWCA) 회관으로 겨우 피신했다. 이후 신군부에 체포돼 내란음모 가담 등의 죄목으로 징역 8개월을 선고 받았다. 그가 당시 궐기대회를 준비하며 쓴 ‘최규하 정부 규탄 선언문’ 등 일부 문건은 원본이 보존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이씨는 이후 5·18민중항쟁동지회장, 광주전남민주연합의장 등을 지내다 91년 시민 후보로 광주시의회 의원에 당선됐다. 통일운동에 관심을 쏟다 94년엔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투옥되는 가시밭길을 걸었다. 참여정부 때는 한전케이디엔 상임감사와 민주당 여성리더십센터 소장을 지냈다.
이씨는 “이번 연구를 하면서 다음에는 광주·전남의 70년대 운동사를 정리하겠다는 다짐을 했다”며 “5·18 전후의 민주·인권·평화 등 시대정신을 세계에 알리는 일들을 계속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제 인생 3모작의 막은 시작이 되었다..삶의 이정표를 다시금 점검하여 누가 건강한 모습으로 그 자리에 우뚝 서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느냐가 중요하다. 이제 또 하나의 삶의 갈림길에 모두가 서 있는 것이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때가 가장 빠른 때이며 도전과 열정을 가지고 살아가되 장년으로 가면서부터 남을 배려하고 베푸는 삶으로 그 정신을 이어가면 아름다운 마무리까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