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면서 왜 길을 묻나요
일체개 유심조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해골 이야기 ...진성여왕과 요석공주와의 로멘스... 우리들에게 친숙하면서 재미있는 삶의 이야기...또 "당연히 가야할 길을 가면서 멀 그리 슬퍼 하느냐" "길을 가면서 왜 길을 묻나요"등 속세에 있는 사람들에게 살아가는 길을 제시해 준 신라의 철학가이면서 승려였던 원효는 661년 신라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불교 유학을 떠났다. 지금의 경기도 화성에 있던 당항성 근처 토굴에서 하룻밤 자다 목이 말랐던 원효는 옆에 있는 물을 달게 마셨다. 아침에 깨보니 그 물은 해골에 담긴 더러운 물이었다. 원효는 중요한 것은 물 자체의 달고 더러움 같은 바깥 대상이 아니라 그것을 보는 자신의 마음임을 깨닫고 발길을 돌린다.
원효는 이때의 깨달음을 바탕으로 해동종(海東宗)이라는 독자적 불교사상을 개척했다. 이를 담은 대표적 저술 중 하나가 '대승기신론소(疏)'다. 인도의 마명(馬鳴)이 지은 것으로 전해지는 '대승기신론'에 원효가 해설·주석(註釋)을 단 것이다. '대승기신론'은 한·중·일 대승불교 흐름에 큰 영향을 끼쳤고 주석서도 무수히 많지만 원효의 주석이 첫손가락에 꼽힌다. "마음이 생기면 가지가지 현상이 생기고 마음이 꺼지면 가지가지 현상이 없어진다"는 '대승기신론소'의 가르침은 당항성에서의 깨달음과 닿아 있다.
불교사(史)를 연구하는 중국 딩위안(定源) 스님이 런던과 모스크바에서 원효 '대승기신론소'의 8~10세기 필사본 조각들을 찾아냈다는 소식이다. 대영도서관과 러시아 과학아카데미가 소장한 '둔황 고문서' 더미에 섞여 있는 것을 확인해 한국에서 열리는 학술세미나에서 발표할 것이라 한다. '둔황 고문서'란 중국 서쪽 끝 옛 실크로드 요충지인 둔황의 석굴사원들, 막고굴에서 발견된 문서들이다
1900년 왕원록이라는 승려가 막고굴의 모래를 청소하다 벽에 뚫린 구멍을 발견했다. 파보니 비밀 공간이 있었고 거기엔 어마어마한 양의 고대 문물이 1000년 넘게 간직돼 있었다. 소문이 나자 영국·독일·일본·러시아 학자와 탐험가들이 몰려들었다. 훗날 '실크로드의 악마'로 불린 약탈자들이다. 왕원록은 은화 몇푼씩을 받고 마차 수십대분 고서화들을 이들에게 넘겼다.
둔황은 실크로드 여행자들이 거친 타클라마칸사막을 건너기 앞서 여장을 점검한 마지막 주유소 같은 곳이었다. 여행자들은 석굴사원을 찾아 머나먼 신라땅 승려 원효의 '대승기신론소'를 외우며 여행의 안녕을 기원했던 것이다. 새삼 원효사상의 국제적 위치를 깨닫는다. 마음의 수양을 강조했던 원효는 1300년 뒤 자기 저술이 역사상 가장 파렴치한 문화재 약탈자들의 약탈 대상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