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집배원의 ‘제2의 인생’
암 선고 그에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모든 게 원망스럽고 후회됐다. 그러나 엎질러진 물이었고, 절망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6년 전 전북 정읍칠보우체국 김천수 집배원에게 찾아온 불행은 너무나 가혹했다.
말기에 든 직장암. 1년 6개월이 고비라고 했다. 수술을 하고 투병을 하면서 우울증에 빠졌다. 아, 인생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8남매의 장남인 그는 서울에서 2년 직장생활을 하다 고향으로 내려가 집배원 생활을 시작했다.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고 사람을 만나는 게 즐거운 그는 집배원을 천직처럼 여겼다. 어렸을 때부터 우표를 수집하면서 우체국과 친숙했고 집배원이었던 숙부를 동경했던 터였다. 오토바이 사고가 잦은 집배원 생활이었지만 무사고 기록을 16년 간 이어온 자부심도 컸다. 하지만 이제 이 모든 게 그에게는 무의미했다.
그가 절망에서 탈출한 것은 인터넷을 통해 암 환자들과 교류하면서다. 산야초로 효소를 만들어 복용하는 게 좋다는 환우들의 말을 듣고 산과 들에 다니기 시작했다. ‘웃음으로 암을 물리친다’는 얘기를 듣고서는 스스로 웃음치료사 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그는 조금씩 절망의 수렁에서 빠져 나왔다.
터널을 빠져나오니 설국이 펼쳐지는 것처럼 그의 앞에 새로운 인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주당이자 골초였던 그는 술·담배를 끊은 돈을 어디에 쓸까 생각했다. 술값으로는 사탕을 사서 독거노인을 돌보는 동네방네 행복단이라는 단체에 갖다 주었다. 담뱃값으로는 양로원 두 곳에 직접 빵, 바나나 등을 사서 찾아갔다. 한두 번 가다 보니 정이 들게 되고 그래서 계속 찾게 됐다. 청소를 해주고 그들의 말벗이 되어주었다. 사탕을 그냥 드리는 것보다 마술을 해서 나오도록 하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해서 하게 된 ‘마술 봉사’는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건강이 좋아지고 삶이 더 재미있어졌다. 투병을 위해 딴 웃음치료사 자격증이 쓸모가 없어지자 그는 달리 써먹을 데가 없을까를 또 생각했다. 경로당에 가서 강연을 했다. 경험이 없어 어설프기 짝이 없지만 반응이 괜찮았다. 벌써 경로대학에서 4번째 강좌를 열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하는 김에 보이스피싱 예방이나 새주소 체계에 대한 실속 강의와 마술 공연도 곁들였다.
이렇게 암과 싸운 지 6년. 어느새 암을 이겼다. 그는 6년 전 자신을 절망의 나락으로 몰아넣었던 암에게 말한다. “암이어서 고맙다.” 암으로 인해 삶을 돌아보게 되었고 더 재미있게 사는 길을 찾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16년 전에 있었던 자신의 황당한 행동과 설명하기 어려웠던 심경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었다.
“1996년 정읍우체국에서 근무할 때 3명에게 주는 특별상여금을 내가 받았다. 그 돈으로 직원들과 회식하고 나오는데 구세군 자선냄비가 보였다. 남은 상여금 전부를 거기에 넣어버렸다. 다들 황당해했다. 나 역시 황당했는데, 나중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누는 것은 마음으로 되지 않는다. 아무리 비단결 같은 마음을 갖더라도 술김에 한 실천보다 못하고 의미가 없다. 암은 그에게 그 깨달음을 주었다. 그리고 덤으로 행복이란 걸 얹어주었다. 아니,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었다. 더 고마운 것은 그 행복을 대물림 한 것이다. 그는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자녀들과 함께 양로원 등을 찾는다. 나눔과 봉사를 하면서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는 그의 행복은 배가된다.
김 집배원은 지난 2월 21일 서담상을 받았다. ‘청소년을 위한 나눔문화재단’이 산간오지, 도서, 농어촌, 특수시설 등 어려운 환경에서 묵묵히 일하는 숨은 일꾼을 찾아 주는 상이다.
제2의 인생을 살게 된 된 김천수 집배원에게 암은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었던 것이다.
그것은 나눔과 봉사였으며 웃음이었다.
그는 신문 인터뷰에서 “처음엔 살기 위해서 웃었고, 지금은 행복해서 웃는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