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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젼리더십

고통은 우리모두 함께 해야 할 생활의 일부다

이해인 수녀님. 내가 가슴속에서 우려 나오는 삶의 아름다움을 느꼈던 시 『민들레 영토』를 쓰셨던 분. 그 분이 암의 선고를 받으신 지 5년째 접어 든 것 같다. 암은 내가 아닌 남이 걸리는 것으로 생각하셨던 분.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듯이 설마 내가. 병은 누구에도 예외는 없는 것 같다.  수녀님은 지금도 맑고 고운 언어로 만인에게 행복과 희망을 전한다. 그런 그에게 암이 찾아 왔지만 암의 고통까지 행복지수를 끌어 올리는 족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수술실에서 수십센터의 장을 절제한 이후 눈에는 안 보이고 느낌으로만 아는 불편한 결핍을 항상 안고 삽니다. 짧아진 장의 길이만큼 나의 인생도 나의 시도 전에 비해 짧아진 것이 정말 확실한데 길게 꼬인 내 욕심의 길이는 좀체 줄지를 않아 고민입니다. <이해인의 시 병상일기중에서

 

짧아진 장의 길이 만큼 욕심의 길이가 줄지 않는다는 대목이 너무 절절하다. “암을 미워하거나 투쟁하고 싸우기 보다 동무로서 같이 가는 정겨움을 지니고 다독이면서 좋은 마음으로 대화하며 지냈어요. 그랬더니 아직은 전이를 참아주는 것 같더라고요그는 내일은 예측할 수 없다. 박완서처럼 내일 병원에 실려갈 지 모르다오늘 하루가 생의 전부인 것처럼 살다 보니 4년이 됐다. 남한테 희망이 되도록 날마다 생각하며 산다고 말한다. 그는 4년 동안 시집ž 산문집을 네 권 냈다. 시인 정호승은 수녀님도 고통이 컷을 텐데 암을 문학적으로 더 승화되는 계기로 삼았다  인생의 비밀을 풀어내며 깊어진 글들은 다름 사람들에게 더 큰 위로와 위안의 우림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수녀님은 남수단의 천사() 이태석 신부를 떠올린다. 암을 겪다 보니 눈물이 진주가 되고 고통이 진주가 된다는 이 신부의 말이 더 절절하게 와 닿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또한 수녀님은 작은 이별을 평소에 작은 이별을 잘 준비해야 영원한 이별을 잘 한다고 말한다. 암 덕분에 인간과 자연과 사물을 더 세밀하게 관찰하게 됐고 감사하는 마음과 행복지수가 높아졌다고 한다.

 

수녀님에게 암이 찾아 온 것은 2008년 여름이다. 그 해 6월 중순 어느 성당에서 강의를 끝내고 화장실에 갔다가 진땀이 나고 장이 곽 막혔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달 서울 성모병원에서 대장암(직장암) 3기 진단을 받고 수술했다. 50년 구도자(구도자)의 길을 걸어온 수녀님도 암이 두려웠을까. “검사를 할 때만 해도 몸에 조금 이상이 있을 정도지 암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진전된 암(3)으로 판정이 났어요. 일단 놀랍고 조금은 두려웠지요. 암은 다른 사람이 걸리는 걸로 알았는데žžž. 세상과 작별하는 연습을 서둘러 구체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당시 병원에서의 한 장면, “생존율이 얼마나 되나요”(이해인) ‘하늘에 계신 분만 알지 누가 알겠습니까?(주치의) 이 말을 듣고 주치의에게 모든 걸 맡겼고 장을 수십Cm 잘라냈다.  본인이 힘든 모습을 보이면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할까 봐 자신에게 더 엄격해졌다. 도 닦는 마음으로 조금이라도 먹으려 애썼다. 누룽지라도 말아 먹었다. 누굴 원망하랴. 운동 안 하고 튀김이나 밀가루 음식을 좋아한 내 탓이지. 평소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살아 왔는데 암에 걸리면서 그런 생각이 더 깊어졌고 하루 하루가 지적처럼 느껴졌다.     

 

이제 암에 걸려도 여자 환자의 58.9%, 남자는 39.2% 10년 이상 산다. 국립 암센터가 1999~2007년 국가 암 등록 통계에 등재된 환자 105 4683명을 분석한 결과다. 암센터가 10년 생존율을 공개한 것은 처음이다.  유방암ž 난소암을 겪은 기모(57žž서울 종로구)씨는 오뚝이다. 14년 동안 암세포가 찾아올 대마다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섰다. 김씨는 암은 치료 잘 받고 잘 관리하면 살 수 있는 병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이제 불치병인 암도 의학의 힘과 스스로 이겨 내겠다는 의지 특히 이 것도 하나의 고통인데 이를 삶의 일부란 사실을 깨닫고 일상생활에서 고통과 함께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철학자 우나누모의 이야기처럼 인생은 고()의 축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