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어느 날 오후, 그곳의 유명한 카페에서 노자,공자,붓다가 모여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웨이터가 '삶'이라고 불리는 주스 세 잔을 왔다. 붓다가 눈을 질근 감고 주스를 거절하면서 말했다. "삶은 고통입니다" 중도파로 중용의 길을 역설했던 공자는 눈을 절반만 감고 웨이터에게 주스를 요구했다. 그는 살작 맛만 볼 심산이었다. 맛을 보지 않으면 삶이 고통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겠는가? 공자는 과학적인 마음의 소유자였다. 그는 신비주의자가 아니라 매우 실용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논리적이고 현실적인 사람이었다. 그가 "먼저 맛을 본 다음에 제 생각을 말씀 그리지요."하고 말했다. 이런 태도는 완벽하게 옳은 것처럼 보인다. 그가 혀끝으로 살짝 맛을 보고는 "붓다가 맞습니다.삶은 고통입니다"하고 말했다. 이때 노자가 나서서 "끝까지 마셔 보지도 않고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소?" 하더니 세 잔의 주스를 모두 마셔 버렸다. 그러고는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붓다와 공자가 " 아무 말도 안 하실 겁니가?"라고 묻자 노자가 말했다. "이것이 나의 말이오. 이 춤과 노래가 나를 대신해서 말해 주고 있소이다!"
끝까지 맛보지 않고서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리고 끝까지 맛을 보아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단어로도 그 인생의 맛을 한마디로 표현하기가 힘들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노자의 방식은 최대한 모든 차원의 삶을 살아라. 어느 한쪽을 선책하고 다른 하나를 거부하지 마라. 중도에 머룰려고 하지도 마라. 균형감은 그렇게 인위저으로 계발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과거에 대한 집착과 미래에 대한 집착을 끊고 현재에 집중하는 연습(명상)을 했을 때 가능해 질 수있다.
현재에 집중할 대 삶 전체를 온전히 살아야 하고, 삶이라는 주스를 마음껏 마셔라...가끔은 쓴맛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좋다. 그 쓴 맛은 달콤함에 대한 미각을 길러 줄 것이다. 쓴 맛을 아는 사람만이 달콤암을 안다. 울 줄 모르는 사람 웃지도 못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맘 껏 웃을 줄 모른는 사라람의 울음은 가짜이다. 그것은 악어의 눈물이다. 그는 진실한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현재에 집중(몰입) 하기 위하여 모든 호흡과 스탭 하나 까지도 집중해야 한다. 기쁠 때 웃을 수 잇야되거, 슬플 때는 울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즐거울 때는 춤을 출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어린애앞에서 겸손할 줄 알아야 한다.
Enjoy the present moment, but Don't hurry.
붓다와 공자가 " 아무 말도 안 하실 겁니가?"라고 묻자 노자가 말했다. "이것이 나의 말이오. 이 춤과 노래가 나를 대신해서 말해 주고 있소이다!"
끝까지 맛보지 않고서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리고 끝까지 맛을 보아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단어로도 그 인생의 맛을 한마디로 표현하기가 힘들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노자의 방식은 최대한 모든 차원의 삶을 살아라. 어느 한쪽을 선책하고 다른 하나를 거부하지 마라. 중도에 머룰려고 하지도 마라. 균형감은 그렇게 인위저으로 계발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과거에 대한 집착과 미래에 대한 집착을 끊고 현재에 집중하는 연습(명상)을 했을 때 가능해 질 수있다.
현재에 집중할 대 삶 전체를 온전히 살아야 하고, 삶이라는 주스를 마음껏 마셔라...가끔은 쓴맛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좋다. 그 쓴 맛은 달콤함에 대한 미각을 길러 줄 것이다. 쓴 맛을 아는 사람만이 달콤암을 안다. 울 줄 모르는 사람 웃지도 못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맘 껏 웃을 줄 모른는 사라람의 울음은 가짜이다. 그것은 악어의 눈물이다. 그는 진실한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현재에 집중(몰입) 하기 위하여 모든 호흡과 스탭 하나 까지도 집중해야 한다. 기쁠 때 웃을 수 잇야되거, 슬플 때는 울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즐거울 때는 춤을 출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어린애앞에서 겸손할 줄 알아야 한다.
Enjoy the present moment, but Don't hur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