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인생은 덧없고 짧은 것이라 할지라도 인간의 뜻은 결코 짧을 수가 없다. 그것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 묘비명(墓碑銘)이다. 묘비명은 후세에 전할 목적으로 고인의 출신 내력과 생시의 행적·특징·남긴 말 등을 돌에 새기는 글로, 장례식 후에 무덤 앞에 세우는 것인데, 묘비명을 보면 한 인생을 살다간 분들을 한마디로 축약할 수 있어 생전의 업적과 사상을 한방에 알아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기행으로 유명했던 중광 스님은 '괜히 왔다 간다'는 익살 섞인 냉소로 세상에 화두를 던졌고, 독설가 I knew If I stayed around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어물어물하다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독설의 묘비명으로 자신의 삶을 마무리 했다
'살았다, 썼다, 사랑했다'는 <적과 흑>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대 문호 스탕달의 묘비명이다
우리나라의 묘비명도 의미 있고 곰곰이 생각해 볼 만한 글도 많이 눈에 띈다..그 중 대표적인 것은 마산제일고등학교 윤용식 교장선생님의 글이다.
'때로는 교실의 폭군으로 군림하면서,
독단과 아집에 의한 잘못된 가치관을
진리인 양 제자에게 강요하여 그들의 삶을 그르치기도 하고,
나태와 안일을 권리라 주장하며,
겸손과 예의를 굴종(屈從)이라 폄하(貶下)하여
건강한 삶의 원리를 부정하고,
올바른 교육자의 길을 걷지 못했던 부끄러운
영혼 여기 잠들다'. 로 되어 있다.
경영과 리더십의 기재인 강철왕 카네기의 묘비명은, '여기 나보다 더 유능한 사람을 내
밑에 둘 수 있었던 용기 있는 지도자 여기에 잠들다'라고 되어 있는데, 카네기 자신
노령에 접어들 무렵 직접 준비했다고 한다.
철강왕이라 불렸던 카네기는 원래 철강 관련 지식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전문가들을 잘 찾아내서 부리는데 탁월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는 부를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권력에 집착하지 않았다. 교육사업과 문화사업에 아낌없이 돈을 헌납했다. 그의 겸손한 묘비명은 그의 삶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끝내지 않은 마침표 란 책에는 “구름 같은 일생을 보내고, 인간이 삶을 마감한 뒤에도 저버릴 수 없는 뜻의 여운으로 남긴 묘비명들은 그래서 아포리즘(Aphorism)의 비망록이며, 끝내지 않은 마침표인 것이다.” 란 구절이 있듯이 묘비명은 삶의 종착역에 쓰여진 표식의 팻말이 아니라 더 달리고 싶어하는 인간 의지의 이정표이며 방향타인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끝났지만 끝내지 않은 마침표, 차라리 쉼표인 것이다. 나는 묘비명에 어떤 글을 남기고 갈까? 고민해 볼만한 일이다.